맥킨지(McKinsey)가 전 세계 마케팅 조직이 당면한 문제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10월 발표한 보고서 <Rewiring Martech: From Cost Center to Growth Engine>를 통해 수년간 기업들은 마케팅 테크놀로지(MarTech)에 막대한 투자를 해왔지만, 정작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마케팅 자동화 플랫폼, 고객 데이터 플랫폼(CDP), 개인화 엔진, 캠페인 관리 솔루션 등 다양한 기술이 등장했지만, 이들이 만들어낸 결과는 ‘비용 절감’에 머무르거나 일부 기능적 효율 개선에 그쳤다. 맥킨지는 이러한 현실을 두고 “마테크는 더 이상 자동화의 문제가 아니라, 재설계(rewiring)의 문제”라고 진단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오늘날 대부분의 기업이 여전히 ‘자동화 중심의 과도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기술 도입은 빠르게 진행됐지만, 데이터와 프로세스, 인재가 제대로 연결되지 못해 진정한 의미의 ‘지능형 마케팅 조직’으로 발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특히 경영진(C-suite)의 이해 부족, 기술의 복잡성, 성과 측정 체계의 부재, 그리고 AI 시대에 맞는 인재 역량 부족이 마테크의 성장을 막는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많은 조직이 여전히 마케팅을 비용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데이터나 AI가 만들어내는 가치를 수익으로 전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맥킨지는 “지금이야말로 마테크를 비용 센터(cost center)가 아닌 성장 엔진(growth engine)으로 전환할 시점”이라고 강조한다. 단순히 새로운 툴을 도입하거나 광고 예산을 늘리는 방식이 아니라, 조직의 구조와 문화, 리더십의 사고방식 자체를 재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기술보다 사람 중심의 변화다. 최고마케팅책임자(CMO)뿐 아니라 최고재무책임자(CFO), 최고기술책임자(CTO) 등 모든 경영진이 데이터와 AI의 역할을 이해하고, 이를 기반으로 조직의 목표를 재정의해야 한다.
맥킨지는 마테크 혁신의 방향을 크게 세 가지로 제시한다. 첫째는 데이터 통합의 구조적 재설계다. 현재 대부분의 기업은 서로 다른 부서와 플랫폼에서 분리된 데이터를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광고팀은 미디어 데이터를, CRM팀은 고객 행동 데이터를, 영업팀은 매출 데이터를 따로 관리한다. 이처럼 데이터가 흩어져 있으면 AI가 학습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기업은 데이터 파이프라인을 통합하고, 데이터의 흐름이 부서 간에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재구성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데이터 품질을 유지하고, 개인정보보호 규제를 준수하는 체계적인 관리가 병행돼야 한다.
둘째는 AI 기반의 실시간 의사결정 구조 확립이다. 맥킨지는 이를 ‘지능형 오케스트레이션 시스템(Intelligent Orchestration System)’이라고 부른다. 기존에는 마케터가 캠페인을 설계하고, 데이터를 분석한 뒤, 결과를 해석해 다음 전략을 세웠다. 이 과정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대부분의 판단이 과거 데이터에 의존했다. 반면 AI 오케스트레이션 시스템은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사용자 반응에 따라 광고나 메시지를 즉시 조정한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특정 제품을 둘러보다가 구매를 망설이면, AI는 자동으로 할인 쿠폰을 제안하거나 유사한 제품을 추천한다. 이는 단순한 개인화를 넘어, 마케팅 전체를 하나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유기적으로 작동하게 만든다.
셋째는 인재와 조직의 재구성이다. 맥킨지는 “기술의 성공은 사람의 역량에 달려 있다”고 지적한다. AI가 아무리 정교해도, 이를 설계하고 관리할 수 있는 인재가 없다면 기술은 무용지물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많은 기업이 여전히 마테크 전문 인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마케팅팀은 기술을, IT팀은 마케팅을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단절이 조직 내부의 ‘데이터 사일로(Data Silo)’를 더욱 심화시킨다. 맥킨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마테크 플루언시(MarTech Fluency)’를 핵심 역량으로 제시한다. 즉, 마케터는 기술 언어를 이해하고, 데이터 과학자는 마케팅의 목적을 이해하는 양방향 학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일부 선도 기업들은 사내 아카데미를 운영하거나, AI 교육을 전 부서에 의무화하고 있다.
보고서는 또한 마테크의 성과를 측정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많은 기업이 클릭 수, 오픈율, 조회수 같은 단기 성과 지표에 의존했다. 하지만 이는 마케팅의 진정한 효과를 반영하지 못한다. 대신 총소유비용(TCO), 생산성 향상, 매출 기여도와 같은 실질적 비즈니스 성과를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자동화 도입으로 캠페인 운영 시간이 얼마나 단축되었는지, 고객 획득 비용이 얼마나 절감되었는지,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이 매출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측정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변화는 단기적인 성과보다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흥미로운 점은 맥킨지가 ‘에이전틱 AI(Agentic AI)’라는 개념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AI가 데이터를 분석하는 수준을 넘어,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하며 결과를 학습하는 자율형 인공지능 계층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AI가 광고 예산을 스스로 조정하거나, 고객 반응에 따라 콘텐츠를 수정하는 식이다. 맥킨지는 이러한 AI가 향후 마테크 시스템의 핵심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미 일부 글로벌 기업은 이를 시험적으로 도입해 마케팅 비용을 15~30% 절감하고, 전환율을 평균 20% 이상 끌어올린 것으로 보고됐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맥킨지는 “기업의 마테크 실패는 기술 때문이 아니라 문화 때문이다”라고 단언한다. 경영진이 데이터를 신뢰하지 않고, 부서 간 협력이 이뤄지지 않으며, 실패를 두려워하는 조직에서는 혁신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리더는 기술보다 사람을, 도입보다 활용을, 속도보다 방향을 중시해야 한다. 결국 마테크의 성공은 경영진이 ‘데이터 중심 문화’를 얼마나 확고히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다.
보고서 말미에는 기업이 실질적으로 취할 수 있는 몇 가지 실행 로드맵도 제시된다. 첫 단계는 마테크 현황을 진단하고, 기술 자산과 인력 역량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그 다음은 통합 로드맵을 설정해 데이터와 플랫폼을 정리하고, 불필요한 기술을 제거하는 과정이 뒤따른다. 이후 AI 오케스트레이션 시스템을 중심으로 캠페인 기획, 고객 세분화, 성과 측정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하는 단계에 들어간다. 마지막 단계는 학습 조직으로의 전환이다. 데이터 기반의 실험을 반복하고, 결과를 공유하며, 이를 새로운 캠페인 설계에 반영하는 ‘루프형(Loop-based)’ 마케팅 구조를 정착시키는 것이다.
맥킨지는 이번 보고서를 통해 AI 시대의 마테크가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과 조직, 문화의 문제임을 분명히 했다. AI는 인간의 창의력을 대체하기보다 이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기술의 진정한 가치는 자동화가 아니라 연결에 있으며, 마케터의 역할은 단순한 실행자가 아니라 ‘데이터 지휘자(Data Conductor)’로 진화해야 한다.
결국 마테크의 미래는 기술이 아니라 사고방식에 달려 있다. 비용 절감의 수단으로서의 마케팅이 아니라, 고객과의 관계를 통해 가치를 창출하는 성장 엔진으로서의 마케팅. 맥킨지는 “이제는 마테크를 다시 설계해야 할 때”라고 결론짓는다. 기업이 AI 중심의 마테크를 제대로 재배선(rewire)할 수 있다면, 마케팅은 다시 한 번 기업 성장의 중심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